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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Shirley Sullivan

관리자2026년 6월 22일조회 99
Dr.Shirley Sullivan

Dr.Shirley Sullivan



1997년 7월 15일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거의 30년전 어느날이였다.


그날이 나머지 내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원해서 간 길이였지만,

도착하는 순간부터 혼란스러웠고

아름다운 여름의 밴쿠버가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 한 일은

캠퍼스에 있는 St. Mark College의 성당을 찾는 것이였다.

그나마 캠퍼스안에 성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12시 30분.. 매일 점심시간 미사

수업중에 있는 학생들을 배려해서 점심시간이 미사시간이였고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사에 참석했다.


영어미사는 처음이였기 때문에 낯설었지만

미사는 그 전례순서가 언어에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모두 공통이기 때문에 미사를 참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12시 30분 미사를 마치고, 집에 갔다가

다시 4시에 시작되는 저녁기도에 참석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참석을 했던가..


하얀색 블라우스에

파란색 스커트를 입은 분이 내 옆에 앉으셨다.

저녁기도 (성무일도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가

조금 복잡해서 헤매이는 나를 보셨는지

옆에 앉으셔서 서투른 나의 기도를 안내해주셨다.


그날 이후 그분은 매일 저녁 기도때마다

내 옆에 앉아주셨고

저녁 기도가 끝나면 캠퍼스를 함께 걸으면서

어느새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늘 같은 옷차림을 하시는 것을 보고

수녀님이신줄 알았다.


알고보니

UBC 대학교 고전문학과 종교학과 교수님이셨다.


Dr. Shirley Sullivan...

캐나다에서도 아주 저명한 고전문학과 종교학 분야의 학자..



그 분의 저명한 학자로서의 모습이

또한 얼마나 겸손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드러나던지.


저녁 기도를 마치고 나면

교수님과 나는 캠퍼스를 걸으면서

자연스롭게 대화를 나누기 시직했고,

영어가 서툰 나에게 교수님은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기 시작했다.


학자로서의 모습과

겸손과 친절, 그리고 아름다운 미소뒤에

큰 슬픔을 안고 살고 계시다는 것

한동안은 우울로 많이 힘드셨다는 것...


나 또한 서투른 영어로 나의 이야기를

교수님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그렇게 통했던 걸까


얼마나 따뜻하게 늘 대해주시던지.

캐나다에서 엄마를 만난 느낌이였다.



한번은 본인의 수업시간에 초대를 하셔서

수업을 듣게 하셨는데... 그건 순전히

내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것이였다.

직접 영어 튜터를 구해서 튜터비용까지 지불하시면서

정말 딸처럼

내 영어공부 증진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토요일이면 캠퍼스안에 있는 UBC 병원부설 병원 자원봉사에도

나를 데리고 가셨고, 병실을 돌면서 만나는 환자분들에게

나를 소개하시곤 했다.


언젠가는 밴쿠버 시내 아주 큰 예술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에 초대하셨는데,

나만 초대를 한 것이 아니라,

그때 당시 나의 룸메이트였던 성희라는 교환학생까지

함께 초대하셨다.

내가 저녁에 뮤지컬을 보러가면 성희가 혼자 있을까봐

우려하셔서 함께 초대해주신 것이였다.

뮤지컬이 끝나고 한국식당을 미리 알아보시고 예약을 하셨고

그때 난생처음으로 한국음식을 드셨다니

매운 한국음식을 마다하지 않고 드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마음에 살아 있다.



1998년 2월 20일.

아침 일찍 살고 있는 캠퍼스 아파트 벨이 울렸다

나가보니 선물을 놓여 있었다.

생일을 알려드린 적이 없는데

생일 축하한다는 카드와 함께 교수님이 놓고 가신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준비를 도와주시다가 내 서류를 보셨던 모양이다.

서류에 적혀 있던 나의 생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챙겨주신 것이였다.

(사실 그 생일은 호적상 생일이지 진짜 생일은 아니였지만)


내가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밴쿠버 캠퍼스를 떠나면서

교수님과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되었다.

내가 떠날때 그렇게 아쉬워하시던 모습

교수님께는 큰 슬픔이셨던 것 같다.


비록 떠나왔지만,

교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셨던 사랑과 친절 돌봄은

늘 가슴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주 문득 교수님이 떠올랐다.

'은퇴하셨을 텐데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건강하실까?'


곧바로 이메일을 찾아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내 편지를 받고 하루 종일 힘이 났다는 말씀이

오히려 나를 더 기쁘게 했다.


30년 전 내가 받았던 사랑과 돌봄을

교수님께 그대로 돌려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받은 사람에게 다시 갚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것.


교수님께 받은 따뜻함과 친절,

경청과 격려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교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감사인지도 모르겠다.


쉘리 교수님.

아니,

이제는 그냥 쉘리.


다시는 연락이 끊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기뻐해 주셔서,

감사해 주셔서,

사랑해 주셔서,


그리고 다시 연락해주시고 받아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쉘리.


언제나 건강하세요.

그리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세요.



Shirley Sullivan - Department of Ancient Mediterranean and Near Easter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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