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하루종일 비가 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 같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시간들...
1997년 7월 15일
밴쿠버에 첫 발을 딛고
덥지 않은 여름을 보냈다..
10월 중순쯤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밴쿠버의 가을과 겨울은 우기라서 어떨 때는
거의 40일간 매일 같이 비가 온 적도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비를 좋아했던 나는
비오는 밴쿠버의 가을과 겨울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가끔씩 겨울에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밴쿠버에서의 첫 해..
"저는 비가 참 좋아요" 라고 말하면
주변에 계신 분들이 웃으시며 한마디씩 하셨다.
"이번 가을과 겨울만 지나보세요. 하도 비가 와서
아마도 지긋 지긋 하게 느끼실 겁니다.
비가 좋다는 말은 쏙 들어갈걸요."
그러나 그분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지속되었지만
나는 마냥 비가 좋았다.
그 다음해 또 같은 말을 들었다.
"몇년 비오는 밴쿠버를 겪어 보세요.
비 좋다는 애기는 정말 쏙 들어갈걸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거의 20년간..
가을, 겨울 많은 비를 만났다.
역시 그분들의 예상은 20년간 빗나갔다.
아무리 비가 와도
나는 여전히 비가 좋았다.
비가 오면
왠지 마음이 밝아지고
집중이 잘되고...
책상에 앉아
창밖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할 때의 여유로움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큰 평화를 주었고
참 위로의 시간이였다.
아직도 비가 여전히 좋은 걸 보면
비에 대해서만은 참으로 내가 진심인거 같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비에게 진심인 것처럼
내가 누군가에 이리 진심이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지금도
진심인가.
이유 없이 좋고,
조건 없이 환영하고,
묻지 않고 믿어 주고,
그저 사랑하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진심.
한편,
나에게도
이리 진심인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던가.
지금 있는가.
내가 진심인 그 누군가.
나에게 진심인 그 누군가.
이 진심을 품을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그 누군가를 떠올리니
문득 알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내리는 비처럼
내 삶에도
축복이 오래전부터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나는 다시
조용히 고백해 본다.
“비야, 나는 네가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