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해야 하는 이유, 절망할 수 없는 이유” – 희망의 곶에서
- 김미라
- 2018년 5월 5일
- 2분 분량
2018 년 5 월 4 일
2010년 어느 날 밴쿠버 공항을 떠나 토론토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장으로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일 때문에 떠난 여행이지만, 오래간만에 나만의 휴가라고 생각하니 새벽 비행기에도 몸을 그리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나라인데도 얼마나 땅이 넓은지 시차가 4 시간 30 분이나 나니 일찍 출발하였는데도 토론토 공항을 경유해서 컨퍼런스가 있는 도시인 St. John 이 위치한 NewFoundland 라고 하는 주에 있는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너무 늦은 시간. 그 다음날 힘겹게 시차를 이겨내고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졸고, 지루해하면서 하루를 그럭 저럭 끝낸 오후… 컨퍼런스에 참가한 참가자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전에 St.John의 명물이라고 하는 대서양 끝자락이 있는 곳을 버스로 방문하게 되었다.
밴쿠버와는 너무 다른 풍경, 산도 별로 없고, 춥기까지 한 5월의 어느날 저녁… 컨퍼런스에 별 흥미를 느끼기 보다 그저 쉴려고 출발한 여행이였고, 별 관심없이 모두들 간다고 하니 따라간 그 대서양 끝자락이 있는 곳…. 버스에 내려서 안내하는 분이 이끄는대로 대서양 끝자락에 서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서양의 끝이 아니라 대서양과 만나는 마지막 대지, 땅위에 서보는 것이다.
대서양과 만나는 땅의 끝자리. 바로 한발짝만 내 디디면 무섭기까지 한 그 푸른 대서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한발짝 사이에 생과 죽음, 땅과 바다가 갈라진다는 것을 막상 직접 경험하니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대서양의 저 건너편에는 바로 유럽이 있지 않은가? 얼마나 가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순간, 대서양과 만나는 바로 땅끝 그 끝자리에 꽂혀져 있는 팬말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The Cape of Hope (희망의곶)”!
바로 땅의 그 끝자리가 “희망의곶”, 희망이 시작되는 자리라니.. 바로 한발짝만 내 딛으면 끝이 없는 절벽으로 그 광활한 바다속으로 빠져버리는데, 그 자리에로 ‘희망이시작되는자리’ 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그자리를, 어쩌면 희망의 끝자락, 절망이 시작되는 그 자리를,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희망이 시작되는 자리라고 적은 것일까?
대서양의 푸른 바다 보다 그 넓고 깊은 누군가의 절망과 희망에 대한 역 발상은 컨퍼런스 내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고, 컨퍼런스를 마치고 돌아와 내내 머리속에 맴돌았다. “희망의곶” – 대지의 끝 그 자리, 한 없는 절망의 바다, 죽음의 바다가 펼쳐지는 바로 그 앞을 왜 누군가는 “희망이시작되는자리”라고 적어 놓은 것일까?
희망해야 하는 이유에 답하기에 앞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절망해야 하는 이유’을 먼저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절망해야 하는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이유에 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절망해야 하는 이유, 그래서 우리가 결국 희망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이유를, 대서양의 끝자락 “희망의 곶” 은 그날 나에게 말해준 것은 아닐까…
“절망은 넌센스입니다. 절망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선택할 수 없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바꾸는 선택은 언제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절망의 끝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빅터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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